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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나눔-자유공간

학교 공기정화장치, 제대로 가고 있나?

미세먼지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커지면서 미세먼지 저감 대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일단 국내 미세먼지의 절반쯤을 차지하는 중국발 미세먼지에 대한 대책은 우리 힘으로는 다소 한계가 있다 보니, 나머지 절반쯤 차지하는 국내산 미세먼지 대책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보다 근본적인 대책 - 경유차 운행 제한 및 점진적 교체, 노면 청소, 발전소나 소각장이나 비산먼지 날리는 건설현장이나 휘발성유기화합물 뿜어내는 공장이나 불법소각 등 다양한 발생원 감독 강화 및 미세먼지 저감 대책, 녹색도시 만들기 등등 - 으로 성과를 내기에는 조금 시간이 걸리다 보니, 정치인들은 우선 건강취약계층인 어린이나 노인 등의 집단상주지에 우선 급한 대로 공기정화장치를 설치해주겠다는 공약을 다투어 내놓았고, 2018년부터 하나둘 실행에 옮겨져왔다.




문제는 각기 조건이 다른 현장에 가장 적합한 공기정화장치에 대한 면밀한 사전검증 없이 예산을 졸속으로 세우고 졸속으로 집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창 진행되고 있는 경로당이나 어린이집 공기정화장치 보급의 문제점은 따로 짚기로 하고, 여기서는 관련 공공사업으로는 최대 규모가 돨 것으로 보이는 학교 공기정화장치에 집중해보자.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전국의 거의 모든 교육감 후보들이 학교 공기정화장치 보급을 공약으로 내놓고 교육부도 이를 뒷받침하는 정책을 펼치면서 총액 1조 원이 훌쩍 넘는 학교 공기정화장치 보급 사업이 막을 올렸다.

멀게는 약 10년 전부터 한때 바람을 탔던 1단계 공기정화정치 보급사업으로 20% 남짓의 학교교실에 각종 공기정화장치가 설치된 바 있으니, 남은 것은 약 80%의 학교교실이 그 대상이다.

전국의 교육감 당선자들이 지난해 이구동성으로 2~3년 내에 모든 초중고 교실에 공기정화장치를 설치하겠다고 공약한 뒤, 올해부터 사업이 본격화하고 있다.


한데 교육부의 기준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으로 모호한데다 각 지방교육청과 교육지원청의 이해도와 입장이 각각 다르고, 지역마다 미세먼지 폐해의 편차도 작지 않으며, 이해당사지인 학부모들의 입장도 제각각이다 보니, 지역마다 배가 산으로 가고 있는 실정이다.


어떤 지역에서는 이미 실효성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으로 평가된 일반 공기청정기 업체들의 입김에 휘둘려 여전히 일반 공기청정기를 고집하고, 어떤 지역에서는 그 반작용으로 환기에 초점을 맞춘 공기순환기 보급에 열을 올리고 있다. 

가격 대비 성능이나 효율 평가, 기기의 다양한 조합에 의한 효율 향상 등에 대한 관심은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책임자들이 편의상 단일 업체의 단일 제품 선정, 일정 규격 이상의 제품 중 최저가 입찰이라는 조달 방식의 함정에 빠진 채, 각 유형의 제품들의 한계를 객관적으로 살피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크게 보면, 학교 포함 일반 건축물에 쓰이는 공기정화장치(공기정화기, 공기정화장비, 공기정화설비)는 네 종류로 나뉜다.

하나는 일반 공기청정기로, 미세먼지의 단시간 집진정화 성능은 좋지만 환기 기능은 없고 세균/바이러스/유해물질 제거 성능 등은 거의 제로다.

하나는 공기정화살균기로, 미세먼지의 단시간 정화 성능은 떨어지고 환기 기능은 없지만 장시간 정화능력은 괜찮고, 초미세먼지나 살균, 유해가스 제거 성능(제품에 따라서는 오존 제거 성능까지) 등은 좋다.

하나는 공기순환기(기계식 환기장치)로, 환기 기능은 좋고 미세먼지까지는 어느 정도 잡지만, 초미세먼지나 그밖의 유해물질 정화기능은 매우 미흡한 것이 대부분이다. 공기순환기는 다시 열교환소자 없는 단순 공기순환기와 열교환소자를 장착하여 열 손실을 줄이는 전열교환기로 나뉜다.

다른 하나, 공조(공기조화)장치는 흔히 큰 규모의 시설이나 건물 전체를 덕트로 연결하여 공기 조절 또는 정화를 하는 장치다.


이중 어떤 장치도 단일 장비로는 모든 목적을 두루 충족할 수 없고, 문자 그대로 공기를 '정화'해내려면 두세 가지 장비를 조합 설치하거나 다른 특수장비를 추가 설치해야만 한다.

현재 유통되고 있는 어떤 유형의 장치도 만능의 칼이 될 수는 없다는 말이다.


성능에 한계가 분명한 일반 공기청정기는 접어두고라도, 재미있는 것은 환기에 초점을 맞추어 공기순환기 도입을 주장하면서, 거기에 H13이나 H14 이상의 고성능 헤파필터, 그것도 두꺼운 필터를 장착하여 환기와 정화를 동시에 깔끔하게 해내라는 무리한 주장이다.

고성능 필터를 쓸수록 당연히 환기 성능은 떨어지고 정화 속도도 낮아질 수밖에 없으며, 그럼에도 기준을 맞추려고 무리하게 장비를 가동시킬 경우 소음은 당연히 커지고 장비에 무리가 간다.

이런 자연의 섭리를 어길 경우, 예기치 못한 사고가 일어나거나 장비의 수명이 단축될 수밖에 없고, 게다가 값비싼 필터와 부품을 자주 갈아주어야 하는데, 그 비용은 또 누가 감당할까?


물론 돈을 많이 들여 몇 가지 장비의 장점을 조합한 새로운 기계를 만들어 보급하고, 소음을 감안하여 그것도 교실마다 복수로 설치하고, 그것으로도 부족한 기능은 또 다른 장비를 병행 설치하여 보완할 수는 있다.

그러나 공적 예산을 집행할 때에는 가격 대비 성능/효율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관행은 예산 부족을 이유로 제품을 렌탈로 설치하여 결과적으로 피같은 예산을 낭비하는 것이다. 

보통 렌탈 설치 후 기부받기까지 5년 동안 수요기관에서는 제품가의 평균 3배 정도를 지출한다.

그런데 공기정화기의 필터 교환은 매우 쉽고 위험성도 없으므로 필터를 염가 구매하여 직접 교환해도 아무 문제가 없고, 더욱이 중장기 무상 A/S 조건으로 구매하면 업체에서 다 알아서 교환해준다.

다시 말해서 필터 무상 교체 A/S를 감안한다 해도 제품가의 3배를 들여 렌탈 설치하는 것은 미친 예산낭비라는 거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행정/감독기관의 역할이다.

우선, 돈 얼마 안 들이고도 다양한 조합의 시험 설치를 해볼 수 있는데도 왜 안 하는지 의문이다.

다양한 설치 현장의 정밀 실사 검증은 왜 안 하는지 의문이다.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 지역별, 현장별 편차가 얼마나 크다고 현장별 가이드라인을 왜 제시하지 못하는지 의문이다.

제안서 평가와 검증을 통해 좋은 질의 제품을 설치할 수 있는 2단계 입찰 등의 다른 조달방식도 있는데 왜 최저가 입찰제만 고집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형식적인 가이드라인만 제시하고 알아서 하라는 것은 일종의 직무유기 아닌가?


미세먼지, 더 해로운 초미세먼지, 그 속에 섞인 각종 유해물질들 잡아서 우리 아이들의 건강권 보장해주어야 한다.

미세먼지 경보 울린 날에는 기계식 환기 잘 시켜 이산화탄소 주기적으로 빼주어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학교 교사 하나를 통으로 하는 실험도 해볼 수 있다.

크게 어려운 일 아니고, 엄청난 지식과 정보가 필요한 일도 아니다.

제대로 일하는 공직자 몇 사람만 있어도 몇 가지 실험을 거쳐 필요한 가이드라인 잘 만들 수 있다.

기왕에 뿌려지는 피같은 예산, 정말 잘 쓰였으면 좋겠다.


문의 : 010-3802-5694(퓨어시스 수도권본부)